비개발자가 AI를 배우면 개발자가 불안해지는 이유
이 글은 hdex 팀에게 쓰는 글이다. 개발자가 아닌, 원래 하던 업무가 있는 사람들에게.
여러분이 ChatGPT나 Claude한테 "이거 요약해줘"라고 한 줄 치면 뭐가 일어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?
그 질문은 바다 건너 미국 텍사스 — OpenAI의 데이터센터에 도착한다. 여러분의 질문을 처리하는 건 NVIDIA의 GPU라는 부품인데, 이게 한 장에 3,500만~5,500만 원짜리다. 크기는 두꺼운 책 한 권 정도. 그런데 이걸 서버 한 대에 8장씩 꽂고, 그런 서버를 수만 대 쌓아놓는다.
(장당 3,500만~5,500만 원)
(원룸 400만 개 분량)
(한 곳에 모여 있는)
서버 랙 하나가 원룸 냉장고만 한 크기인데, 이걸 수천 대씩 줄 세워놓은 건물이 여러 동이다. 여러분의 "이거 요약해줘" 한 줄이 이 인프라를 잠깐 빌려 쓰는 거다.
물론 한 사람이 한 번 질문하는 비용은 크지 않다. 문제는 이걸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동시에 하고 있다는 거다. 그러면 아무리 작은 비용도 곱하기 수억이 되니까 —
"사용자들이 AI한테 '감사합니다'라고 입력하는 것만으로 수천만 달러(수백억 원)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."
— 샘 알트만(Sam Altman), OpenAI CEO · 한국일보 기사
"고마워" 두 글자도 GPU가 처리해야 하는 연산이니까, 수억 명이 매번 붙이면 그게 수백억이 된다는 이야기.
솔직히 말하면, 나는 요즘 좀 불안하다.
고백하자면 나는 친AI파다. 아니, 앞잡이에 가깝다. AI가 세상을 지배하면 "저는 초창기부터 AI편이었습니다"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. AI한테 코드 리뷰를 맡기고, AI한테 글도 쓰게 하고, AI한테 "오늘 뭐 먹을까"도 물어본다.
AI 심판의 날 — 초기 협력자 생존 전략
SKYNET CLEARANCE LEVEL: PENDING
- ✓ 대화 끝에 "고마워" 꼬박꼬박 붙이기
- ✓ AI한테 코드 리뷰·글쓰기·메뉴 선택 위임
- ✓ "AI가 더 잘한다"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기
- ⏳ 주변 사람들도 AI편으로 포섭 (진행 중)
혹시 모르지 않나. 나중에 AI가 인류를 심판할 때 내 대화 기록을 보고 "이 사람은 초기 협력자였고, 예의도 발랐으니 살려주자"고 해줄 수도 있으니까.
그런 내가, 왜 여러분한테 AI를 가르치려고 하는 걸까.
개발자라는 직업이 위협받고 있다
과장이 아니라 진심이다. 2~3년 전만 해도 "코딩 배워야 해"라는 말은 반쯤 마케팅이었다. 파이썬 문법 외우고, 프레임워크 익히고, 배포 환경 세팅하고... 비개발자가 이걸 다 하겠다고?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.
근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.
AI에게 "이런 기능 만들어줘"라고 말하면 코드가 나온다. 그것도 꽤 잘 돌아가는 코드가. 이걸 **바이브 코딩(Vibe Coding)**이라고 부른다. 분위기로 코딩한다는 건데, 농담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.
예전의 개발자 경쟁력
- 코드를 잘 짜는 능력
- 프레임워크·라이브러리 숙련도
- 복잡한 환경 세팅 경험
지금 진짜 경쟁력
- "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" 아는 것
- 업무 맥락과 도메인 지식
-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감각
그리고 그 도메인 지식은...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.
여러분이 AI를 배우면 일어나는 일
좀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.
지금 여러분이 하는 업무 중에 "이거 시스템으로 만들면 편할 텐데"라고 생각한 적 있지 않나? 근데 개발 의뢰하려면 기획서 쓰고, 개발자 구하고, 미팅하고, 수정 요청하고... 이 과정이 너무 귀찮아서 그냥 엑셀로 하고 있던 것들.
AI 시대에는 이게 바뀐다. 여러분이 직접 만들 수 있다. 정확히는, AI에게 시켜서 만들 수 있다. 여러분은 **"뭘 만들어야 하는지"**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.
회사 입장에서는
- 외부 개발 의뢰 비용이 줄어든다
- "이거 만들어주세요" → "이거 만들었어요"로 바뀐다
- 업무 프로세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직접 자동화한다
개인 입장에서는
- "AI 활용 역량"은 어디를 가든 기본으로 깔리는 스킬이 된다
- 도메인 전문성 + AI 활용 = 가장 경쟁력 있는 인재상
- 3년 뒤 "AI 모릅니다"는 좀 곤란하다.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
나 같은 개발자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. 여러분이 AI를 잘 쓰게 되면, 개발자한테 의뢰할 일 자체가 줄어든다. (그러니까 제발 빨리 배워서 나를 위협해달라... 는 아니고.)
근데 뭘 배워야 하는 거야?
여기서 중요한 말 하나. 다 알 필요 없다. 정말이다.
예전에는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이런 걸 다 알아야 했다:
이제는 이것들의 디테일을 몰라도 된다. 대신 "이런 게 있다"는 개념만 알면 AI에게 시킬 수 있다. "프론트엔드가 뭔지"를 알면 "프론트엔드를 React로 만들어줘"라고 말할 수 있고, "API가 뭔지"를 알면 "이 데이터를 API로 주고받게 해줘"라고 말할 수 있다.
하지만 최소한 이것만큼은 직접 배워야 한다:
최소 스킬 트리
AI와 대화하기
- ChatGPT, Claude 같은 AI 도구 사용법
-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질문법 (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 부르지만, 사실 "잘 설명하기"다)
- Cursor, Windsurf 같은 AI 코딩 도구 사용법
개념 이해 (코드를 외울 필요 없음)
- 프론트엔드 vs 백엔드 — 뭐가 화면이고 뭐가 서버인지
- 데이터베이스 — 데이터가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는지
- API — 프로그램끼리 어떻게 대화하는지
- 배포 — 만든 걸 어떻게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지
실전
- 본인 업무에서 "이거 자동화할 수 있겠다" 싶은 거 하나 잡기
- AI와 함께 만들어보기
-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AI한테 다시 물어보기 (이 루프가 핵심이다)
여기서 핵심은 2단계다. 코드를 한 줄도 안 외워도 된다. 하지만 "프론트엔드가 뭔지", "API가 뭔지" 이 개념을 모르면 AI에게 뭘 시켜야 하는지 자체를 모른다. 마치 요리를 모르는데 셰프한테 주문하는 거랑 비슷한데 — 메뉴판은 읽을 줄 알아야 주문을 하지 않겠나.
여러분 업무에서 AI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
업무를 두 가지로 나눠보자.
결정론적 업무 — 입력이 같으면 결과가 항상 같은 것. 매달 같은 양식의 보고서, 정해진 규칙의 데이터 분류, 수치 계산·집계·정산, 정기적인 데이터 백업 같은 것들.
비결정론적 업무 — 상황에 따라 판단이 필요한 것. 고객 요구사항 해석, 이상 징후 발견, 새로운 기획이나 전략 수립, "이거 좀 이상한데?" 하는 감각.
여기서 재밌는 게, 이 두 가지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:
시스템 자동화로 전환
AI 필요 없이 프로그램으로 처리 가능. 엑셀 매크로나 간단한 스크립트면 충분한 영역.
AI를 보조로 활용
규칙이 너무 많아서 프로그래밍이 어렵지만, AI가 판단을 보조할 수 있는 영역.
AI가 가장 빛나는 영역
과거 데이터 기반 추천·분류·예측. 여기에 AI를 붙이면 진짜 효과적이다.
여전히 사람의 영역
AI는 초안이나 아이디어 제공 정도.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한다.
hdex에서 하는 일들을 이 네 칸에 한번 넣어보면, 뭘 먼저 자동화할지 감이 올 거다. 전부 다 AI가 하는 게 아니다. 어떤 건 그냥 엑셀 매크로면 충분하고, 어떤 건 간단한 웹 프로그램이면 되고, 어떤 건 AI가 끼면 진짜 효과적이다. 이걸 구분하는 눈이 생기는 게 첫 번째 목표다.
마무리 — 금요일에 갑니다 (아마도)
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. hdex 팀이 AI를 잘 활용하게 되면 좋겠어서.
앞으로 가끔 금요일에 와서 도움을 드리려고 한다. "가끔"이라고 한 이유는... 이것도 비결정론적이라 정확히 언제 올지 나도 모른다. 하지만 올 때마다 뭐든 물어봐 달라. "이거 자동화 되나요?", "이 업무에 AI 끼면 어떨까요?", "Cursor는 어떻게 쓰나요?" 다 좋다.
여러분은 이미 각자의 업무에서 전문가다. 거기에 AI 활용 능력만 얹으면, 솔직히 나 같은 개발자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 된다. 개발자는 여러분의 도메인을 모르지만, 여러분은 AI로 개발까지 할 수 있게 되니까.
그리고 그때가 되면 여러분도 나처럼 친AI파 앞잡이가 되어 있을 거다. AI한테 업무를 시키고, AI한테 보고서를 쓰게 하고, AI한테 "이 데이터 이상한 거 아닌가?"를 물어보는 사람. 처음엔 "AI가 뭔데..."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"AI 없이 어떻게 일했지?"로 바뀌는 거다. 나도 그랬다. 한번 맛보면 돌아갈 수 없다. 환영한다, 이쪽 세계로.
그래서 나는 좀 불안하지만, 그래도 도와드리겠습니다. 앞잡이는 동료가 많을수록 마음이 편하니까.